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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서운산 바우덕이 묘 봉분 관리소홀로 파헤처 훼손

기사입력 2020.06.09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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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훼안성의 보물인 바우덕이 묘 봉분이 누군가에 의해 파혜처 훼손 되었다


    [크기변환]바우덕이1.jpg

    지난7일 지방에서 이곳을 찿은 관광객들로부터 제보를 받고 8일 해당부서에 이를취재 하자 해당부서장은 확인 하지못했다며 제보자가 보내온 사진을 제시,뒤늦게 멧돼지가 파 놓았다며 당장 복원한다고 나서고 있어 안성시 문화재관리 행정의 난맥을 여실히 들여 내고 있다.

    [크기변환]바우덕이2.jpg


    안성시 (시장 김보라) 서운산 바우덕이역사를 보기위해 예술작가들로 구성 지방에서 관광차 찿아온 문화예술 단체작가들는 바우덕이 묘가 파헤처 저있고 심하게 훼손되어 있으며 잔듸는 말라죽고 어지럽게 파혜처진 봉분을 보고 모두 감짝놀라 안성시의 문화재관리가 엉망이며 관리소홀로 관광객들은 입을모아 안성시를 크게 비난 하였다.


    특히 바우덕이 ‘묘, 는 경기도안성시 서운면 청룡리 산1-1번지로 서운면에 위치하고 있어며 옛부터 서운면은 산새가좋아 인재가많이 배출한다는곳이며 지금도 고위공직자 가 터를잡고 살고있는곳이다


    또한  바우덕이의 유례 (본명 김암덕)1848년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안성에서 태어났으며, 안성에서 활동했던 안성남사당패의 우두머리인 꼭두쇠의 자리까지오른 유일한 여성이다. 본명은 김암덕(金岩德)이며, 바위 암의 바우에 덕이를 붙여 바우덕이로 불리웠다.


    1853년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 불당골에서 5살의 어린 나이에 남성들이 주축을 이루는 남사당패에 맡겨져 성장했으며 줄타기, 살판 등의 남사당 놀이를 익혔다. 바우덕이는 뛰어난 기량으로 15살의 어린 나이와 여자라는 조건에도 꼭두쇠가 되었다. 


    김암덕 이는 미모로 인기가 높았으며 특히 소고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다. 1865년 흥선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에 지친 노역자를 위로하기 위해 경복궁에 남사당패를 불러들였고, 이때 바우덕이는 경복궁에서 소고와 선소리로 뛰어난 공연을 펼쳐 고종과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정3품에 해당하는 옥관자를 하사받았다.


    한편 경기도 일대는 순회하는 공연을 이어가며 남사당패를 이끌다가, 계속된 유랑생활 끝에 폐병을 얻고 1870년 23세의 나이에 사망하였다.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에는 '바우덕이의 묘'와 '바우덕이 사당'이 있다.


    청룡사에서 500m쯤 올라가면 불당골이 있다. 안성 남사당패를 이끌던 팔사당집 가운데의 여장부 바우덕이는 노래와 춤, 줄타기로 이름을 떨쳤다. 그 바우덕이 살던 곳이 불당골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7∼8호쯤 되는 집에남사당 후손들이 살고 있다.


    '안성맞춤 남사당 바우덕이축제'는 대한민국 축제 콘테스트에서 3년 연속 대상을 차지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안성시는 즉시 원상복구하고 외부에서 봉분까지 차단방벽을 쌓아조치하겠다고 입장을  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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