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시 양성면 의료폐기물 소각시설을 둘러싼 갈등은 중앙정부의 환경 행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 사안이 오늘처럼 깊은 지역 분열로 이어진 데에는, 갈등의 최전선에 있어야 할 지방자치단체의 부재가 결정적이었다. 주민과 행정,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안성시는 사실상 한 발 물러선 채 결과만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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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영향평가의 적합 여부는 환경청의 권한이다. 그러나 그 판단이 지역사회에 어떤 파장을 낳는지는 전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몫이다. 특히 의료폐기물 소각시설처럼 주민의 건강권과 환경권이 직접적으로 문제 되는 사안이라면, 지자체는 단순한 인허가 창구가 아니라 사회적 조정자로 기능해야 한다. 안성시는 그 책임을 충분히 수행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양성면에서는 현재 수천 명의 주민이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안성시는 주민 간 입장이 갈리는 상황을 조정하기 위한 공론의 장을 실질적으로 마련하지 못했다. 찬성 측과 반대 측이 함께 참여하는 공개 토론, 환경영향평가 쟁점에 대한 독립적 검증, 주민 건강영향에 대한 시 차원의 추가 분석 요청 등 적극적 중재 수단은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 그 결과 갈등은 ‘주민 대 주민’의 대립 구도로 전이됐고, 행정은 뒤로 빠졌다.
지방자치의 본질은 중앙의 결정을 그대로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지역의 특수성과 주민의 삶을 반영해 중앙 행정에 조건을 제시하고, 필요하다면 보완과 재검토를 요구하는 데 있다. 소규모환경영향평가가 적용된 이번 사안에서 안성시는 주민들이 제기한 다이옥신, 장기 노출, 누적 오염 가능성에 대해 환경청에 어떤 문제 제기를 했는지, 어떤 추가 설명을 요구했는지 분명히 밝힌 바가 없다.
더 큰 문제는 행정의 침묵이 갈등을 중립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방치로 읽힌다는 점이다. 행정이 기준을 제시하지 않으면, 지역사회는 각자의 주장만을 기준으로 삼게 된다.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말은 찬성의 논리가 되고, ‘건강이 우선이다’라는 말은 반대의 구호가 된다. 이 사이에서 안성시는 심판도, 조정자도 아닌 방관자로 비쳐지고 있다.
안성시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환경청의 판단을 존중하되, 그 판단이 지역 주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시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설명해야 한다. 동시에 주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지점에 대해서는 중앙정부에 조건과 보완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지자체가 행사할 수 있는 가장 합법적이고도 강력한 중재 권한이다.
의료폐기물 소각시설 문제는 결국 하나의 시험대다. 개발과 환경, 공익과 지역 수용성 사이에서 지방정부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묻는 시험이다. 안성시가 이 시험에서 계속 침묵을 선택한다면, 갈등은 장기화될 것이고 그 책임 역시 피하기 어렵다. 중재하지 않는 지방자치는 존재 이유를 스스로 약화시킨다. 지금 안성시에 필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갈등의 조정을 해야한다.